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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19-02-10 (일)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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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사랑한 마술사 발람과 하나님의 축복 받은 백성
돈을 사랑한 마술사 발람과 하나님의 축복 받은 백성
2019년 1월 20일 주일 오전 설교
봉독성경 : 민22:1-20절
설교본문 : 민22: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출애굽 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도상에서 이스라엘은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믿음 없음으로 인해 야기된 일도 있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막연한 적의로 인해 겪는 곤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이 모든 사건과 상황 속에서도 야웨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신실하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부터 한 동안 민수기에 계시된 발람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발람시리즈라 할 수 있는 일련의 말씀을 들으며 야웨의 복된 회중으로 일컬음 받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아시고 더욱 더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유랑 생활이 거의 끝나갈 시점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사막 동쪽에 있는 시내 산으로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길은 가장 빠른 길로 열흘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후에, 약 50일 걸려 시내 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을 치고 거의 일 년을 보내게 됩니다. 시내 산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고 성막 건설을 위한 설계도도 주셨습니다. 또 이스라엘을 국가적 형태로 조직하셔서 하나님을 대항한 죄를 계속 짓고 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징벌하시는 사역을 위해 준비시키셨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아름다운 선물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할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이스라엘이 준비되자, 곧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 땅 남쪽에 있는 가데스 바네아로 이끄셨습니다. 모세는 그 땅을 정탐하려고 정탐꾼 12명을 보내 그 땅을 두루 살펴보게 했습니다.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탐색했습니다. 그들은 각기 다양한 정보를 들고 되돌아왔지만 엇갈린 보고를 합니다. 열 정탐꾼들은 이 땅을 결단코 차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크고 장대하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열 명의 보고는 이스라엘을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 편에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야웨의 강력한 힘으로 그 땅을 차지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설득당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투덜거리면서 모세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백성들은 반역했습니다. 이 반역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 40년 동안 유리하도록 하셨습니다. 정탐꾼이 가나안 땅에서 정탐한 모든 날을 일 년으로 환산하였습니다. 반역한 20세 이상 된 이스라엘 백성이 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면서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새로운 세대에게 주셨습니다.

민수기 22장의 사건은 이 40년 광야생활 거의 막바지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스라엘은 에돔과 모압 주변과 사해 동편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의 진행 계획은 사해 북쪽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경로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실 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지역으로 오자, 아모리 두 왕이 군대를 이끌고 이들을 대적했습니다. 그 중 한 왕은 아모리 왕 시혼입니다. 시혼왕은 이스라엘을 뒤에서 공격하여 섬멸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시혼은 이 일에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시혼과 그의 군대는 전쟁에서 참패하여 멸망당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아모리 왕인 바산의 옥이 나아와 이스라엘을 광야로 되돌려 보내려고 시도했습니다. 시혼과 마찬가지로 옥도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옥의 군대를 전멸시키고 그 땅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서 이스라엘은 “모압 평지”에 진을 쳤는데, 그곳은 요단강을 따라, 모압 땅 북쪽 여리고 바로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모압 왕의 이름은 발락이었습니다. 발락은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에게 했던 바를 목도했습니다. 양을 치던 나라가 광야로 나와 강력한 두 왕과 군대를 차례로 격파했습니다. 이로 인해 발락은 크게 놀랐으며, 모압 족속 전체가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발락은 특별히 몇 년 전에 시혼왕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자기 영토의 많은 부분을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이 진을 친 “모압평지”는 전에 아모리 족속의 시혼이 자기들로부터 빼앗아간 지역이었기에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아모리 족속이 모압을 패배시켰고,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을 패배시켰다면, 이 사실이 말하는 바는 이스라엘이 모압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뜻이기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모압은 자신들의 옛 영토인 모압 북쪽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을 매우 걱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했기 때문에, 발락은 모압이 통상적인 방식의 전쟁으로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발락은 외부의 어떤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발락은 이웃 국가 미디안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발락은 만일 미디안이 무언가 중요한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이 소가 밭의 풀을 뜯어 먹음과 같이 우리 사면에 있는 것을 다 뜯어 먹을 것이라며 미디안 장로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여러분은 소가 긴 혀를 낼름거리면서 풀을 뜯어 먹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풀을 뜯으면서 서서히 차근차근 밭 전체를 삼킵니다.

미디안은 발락의 말이 옳다고 확신했습니다. 모압과 미디안은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하여 동맹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왜냐하면 모압과 미디안 둘 다 이스라엘과 혈연적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입니다. 미디안 족속들은 아브라함의 직계손들입니다. 사라가 죽고 난 뒤에, 아브라함은 그두라라 이름하는 다른 아내를 얻었습니다. 그두라를 통해서 아브라함은 두 아들을 얻게 되는데, 이들 가운데 하나가 미디안 족속 창설자인 미디안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모압과 미디안을 강제로 쫒아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요구된 것은 가나안 족속들을 쫒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압과 미디안은 이런 모든 사실을 무시하고 오히려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이 너무 수가 많고 통상적인 전쟁으로 싸우기에는 너무 벅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언가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약하게 만들 어떤 속임수를 필요로 했습니다. 즉 마술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이용할만한 마술사 중에 발람이 있었습니다. 발람은 유프라테스 강 북쪽에 살았던 이방 마술사로 유명했습니다. 발락은 모압과 미디안 장로 대표단을 발람에게 파송해 그를 데려와 이스라엘을 저주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발락은 발람이 저주로 이스라엘을 약화시켜 주면 그 때 군대로 이스라엘을 치고자 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는 적과 싸울 때 두 가지 방식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는 무기이며, 다른 하나는 마술적인 주문이었습니다. 만일 이 두가지 방법을 결합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 둘을 결합해서 전쟁을 치루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발람은 추측컨대 희생 동물의 간이나, 아니면 물 위에 기름을 둥둥 띄워놓거나, 아니면 별이나, 아니면 구름의 모양새를 바라보면서 미래를 점치는 마술가 부류에 속하는 자일 것입니다.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은 신비스러운 지식과 속임수와 신들이 어떤 것들을 행하려고 하거나 행하지 않으려는 힘을 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은 조작 혹은 주문 때문에 신들의 뜻에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신들을 선한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마술가들은 추측컨대 더 높은 능력에 의해서 영감을 받아, 신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발람이 바로 이와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상당한 평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발락은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발락이 마치 발람이 스스로 자기 나라에 복을 내리고 저주를 내릴 권능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참으로 뻔뻔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복과 저주를 내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큰 나라로 만들어 복 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1장 26절 이하에서 야웨께서는 모세의 입을 통하여 “보라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나니… 하나님 야웨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 하나님 야웨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 또 시편 37편 22절에서 “주의 복을 받는 자는 땅을 유업으로 받고 주의 저주를 받는 자는 끊어지리라”고 말했습니다. 복을 내리고 저주를 내릴 권세를 가지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발람은 마치 자신이 이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처했습니다. 복과 저주를 자신이 내릴 수 있는 것처럼 행세했고, 어리석게도 발락이 이런 발람의 주장을 믿었습니다.

물론 발람은 대가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발락은 발람에게 “복채”를 준비하여 사절단들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발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적정 금액을 받지 않으면 오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모압에서 유프라테스까지 거리가 상당히 멀다고 할지라도, 사절단은 발람이 즉각적으로 와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그들에게 오늘밤 여기에 머물라고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발람은 지난 밤 동안 야웨께서 주신 계시를 그 사절단에게 알려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발람이 하나님을 “야웨”라고 부른 것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대문자 네 개를 분명히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이름(YHWH)입니다. 이 이름은 언약적인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출3:14) 이 이름은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신실하심을 강조합니다. 야웨께서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항상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발람은 뻔뻔스럽게 자기 입술에 이 이름을 말합니다. 마치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매우 친밀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발람은 모압 족속에게 강력한 인상을 새기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이 강력한 하나님을 두었다는 것은 이미 고대 근동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대단히 강력하셔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습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은 ‘야웨’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하나님은 야웨이십니다. 발람은 이 하나님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체 했습니다.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야웨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그 날 밤 야웨께서 발람에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모세가 발람에게 나타나신 신을 부른 것을 주목하십시오. 모세는 그를 “하나님(God)”이라고 불렀습니다. 9절을 보면,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성령에 감동을 입은 모세는 야웨, 곧 이스라엘의 언약의 주 하나님께서 이방 마술사 발람에게 임하셨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어떻게 나타나셨는지를 묘사할 때에, 주 하나님의 개인적 이름인 야웨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발람의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모든 능력과 하늘과 땅의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 밤 발람에게 오셔서 이 밤에 그와 함께 유숙하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으신 것은 그들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발람에게 발락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발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당신에게 말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모압왕 발락이 자신에게 사절단을 보내서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여 모압이 이스라엘과 싸워 몰아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전갈을 가지고 왔는데 이 밤 유숙하는 자들이 그 사절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이 발락에게 가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거기에 더해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절)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은 축복받은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야웨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언약적 복이 그들 위에 놓여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눈동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그들 위에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2-3).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은혜와 호의로 죄인들을 찾아오셔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친히 죄인들을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민족보다 더 나은 것이 있기에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자유로우십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은 누구든지 반드시 그 구원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아무도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저주하는 사람을 저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 발람은 모압과 미디안 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내용의 절반만 말했습니다. 우리가 발람의 모습을 제대로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발람은 모압과 미디안의 귀족들을 돌려보내면서 그들에게 “야웨 하나님께서 내가 당신들과 함께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발람은 사절단으로 하여금  자신이 야웨 하나님과 대단히 친밀한 사이라는 생각을 가진 채 떠나보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야웨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두 번째 부분을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곧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 말라.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복을 받은 자”라고 하신 부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사절단에게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바 전부를 다 알려야 했었습니다. “발락에게 말하고 이 사실을 잊지 말라. 이스라엘은 복 받은 나라, 복 받은  백성이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야웨께서 복을 주신 나라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스라엘을 헤칠려고 하지 마라. 만일 네가 그렇게 한다면, 야웨 하나님이 네 원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발람은 이 경고를 발락에게 슬쩍 빠뜨리고 전하지 않았습니다.

사절단은 발락에게 되돌아가서 말하기를, 발람이 자기들과 함께 오는 것을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발락은 자신이 발람에게 충분한 복채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추측했습니다. 또 발람을 더 예우를 갖추어 대우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보다 더 많은 그리고 더 지위가 높은 귀족들을 발람에게 보내어 초청했습니다. 발람은 발락에게 훨씬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발락은 발람에게 백지 수표를 주며,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주겠습니다. 그러니 와서 이 백성을 저주해 주십시오.”

이것이 두 번째 사절단이 발람에게 들고 간 전갈입니다.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일견 발람이 이 유혹을 물리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발람은 그 유혹의 노리개가 되고 맙니다. 발람은 발락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발람은 말하기를, “ 비록 발락이 그 집의 은, 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야웨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 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야웨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18,19절)고 했습니다.

발람은 발락의 왕궁에 있는 모든 은, 금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는 군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발람이 재물과 돈을 사랑했다는 것을 압니다.

신약성경은 몇 차례나 발람을 언급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15절에서 베드로는 불의의 삯을 사랑한 발람을 언급합니다. 발람은 돈과 재물을 사랑했습니다. 유다서(11절)는 돈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따라가는 자”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와 유다 두 사람 모두 발람이 얼마나 돈을 사랑했는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는 신약 여러 곳에서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 어떻게 백성들을 파멸시켰는지를 잘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 파괴를 가져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우정이 깨어집니다. 가족들이 갈리집니다. 혼인 생활이 깨아집니다. 이웃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국 돈에 대한 사랑으로 파멸 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사랑함”이라 불리는 치명적인 암에 면역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면역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많은 돈을 가지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돈을 사랑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돈을 사랑하는 치명적인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 맘몬(재물)을 섬기는 자, 하나님보다 돈을 더 신뢰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 가운데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신뢰를 하나님에게 두지 않고 돈에 둡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보다 돈에서 자기 위로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을 “야웨 나의 하나님”(18절)이라고 불렀습니다. 발람은 자신이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라고 두 번째 사절단이 생각해주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이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으로 알아주기를 바랐습니다. ...만일 너희들이 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기 원한다면, 너희는 나에게 물어야 한다. 누구든지 이 하나님과 접촉하고자 한다면 나, 발람을 통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또한 발람은 두 번째 사절단에게 그 날 자기와 함께 유하라고 말했습니다. 아침에 그는 그들에게 야웨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알려주었습니다.

발람은 여기에서 판돈을 올려 자기 생명을 겁니다. 그는 발락이 제공하는 돈, 백지 수표에 눈이 멀었습니다. 발람은 이를 몹시 탐내 기꺼이 하나님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발람은 아침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알려 줄 터이니 오늘밤 유숙하라고 말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발람은 즉각적으로 두 번째 사절단을 돌려보내야 옳았습니다. 발람은 야웨 하나님이 이미 나에게 너희와 함께 가서 이스라엘에게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니 내가 갈 수 없노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대신에 두 번째 사절단을 환대했습니다. 발람은 대담하고도 뻔뻔스럽게도 “좋다.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실지 살피도록 하자”고 말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형편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여러분의 행동으로) 모르는 척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금하신 일입니다. 실제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마4:7)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20절에서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그 날 밤 다시 오셨다고 알려줍니다. 다시 모세는 그분을 야웨(YHWH/LORD)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불렀습니다. 발람은 자신이 야웨를 알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명백하게 발람이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하려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주신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셨습니까? 발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도록 대단한 마술을 부렸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발람을 자기의 죄악 되고 부패한 마음에 빠지도록 내어버려 두신 것입니다. 이따금씩 하나님께서 사랑 안에서 당신의 백성의 기도를 거절하십니다. 이따금씩 진노로 하나님께서 그들이 원한 바를 악한 자에게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들이 원하는 것에 넘겨주십니다. 만일 그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항해 나간다면, 어떤 시점에 하나님은 그들을 그들의 악한 욕망에 넘겨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서 로마서 1장 24절 이하에서 기록했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 죄를 짓고자 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죄에 넘겨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여기에 우리를 향한 경고가 있습니다. 발람이 했던 방식으로 죄를 짓지 말라는 경고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항해 나가면서 오히려 우리가 바라는 대로 계속하고자 한다면, 그 때 우리 또한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어서 가라. 네가 원하는 대로 계속해라.”는 경고를 받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돈을 갈망하는 고집센 마술사인 발람에게 “발람아,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가라. 발람아 어서 가라!”

발람은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통제하십니다. 완벽하게 통제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그러나 내가 너에게 말한 것만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발람은 고집이 셌습니다. 그는 더 나은 위치를 얻으려 했습니다. 발람은 기발한 계략을 써서 백지수표를 자기에게 주도록 꾀했습니다. 발람은 자신이 주 하나님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오만이요 만용입니다. 발람은 자신이 야웨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발람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지배 아래에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발람이 하나님이 하신 마지막 말씀을 들었습니까? “오직 내가 너에게 말한 것만 행하라”고 하신 것을 순종했습니까? 발람은 정말로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복을 주도록 자신을 사용하려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순종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발람이 어떻게 행하였는지 23장 이하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항상 만물을 통제하십니다. 하나님은 상자 안에 갇혀 있을 수도 있지도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분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도록 합시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복 받은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복 받은 백성인 것처럼, 교회가 그러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새 이스라엘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복이 오늘 교회 속에 살아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이와 같이 사십시오. 복 받은 백성이라는 여러분의 신분을 즐기십시오. 사람들이 저주할 수 없습니다. 원수는 하나님의 가죽 끈에 묶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만물과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고 통제하고 계셔서 이 세상에 어떤 일도 하나님의 지휘와 거룩하고 완벽한 뜻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늘의 은혜로우신 아버지의 지휘 하에서만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능력 아래 모든 피조물을 간직하시어 우리의 머리카락 한 올도, 참새 한 마리도 우리 아버지의 뜻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와 우리의 원수들을 억제시킵니다. 마귀와 원수들이 아버지의 뜻과 허락이 없이는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앎으로 위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발람과 발락은 완전히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이익과 욕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손상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셔서 오히려 주의 백성들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여러분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께 여러분을, 여러분의 몸과 영혼을 드리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복 받은 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사랑하시는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 내리셨기에, 누구도 여러분을 저주할 수 없습니다.

오! 복된 회중, 하나님의 사랑받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 놀라운 은혜를 주신 삼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올려드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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