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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파루시아
작성일 2019-02-10 (일)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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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를 가리킨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를 가리킨다.
2019년 1월 13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 레위기 26:3-13, 시 65:1-13
설교본문 : 레위기 26:3-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회중 여러분!
2019년 신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작년 한 해에도 선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삶을 잘 견디며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나라 안팎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베푸신 풍성한 복 안에서 삶을 즐기며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야웨께서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흙에서 난 인간들은 땅을 벗 삼아 땅의 소산물을 먹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그런 이유로 땅은 참으로 우리의 기업이며 삶의 터전입니다.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지켜주시며 아침마다 우리에게 주의 인자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날마다의 일을 하기 위해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땅과 땅에서 나는 것들의 복은 우리 시대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속되어왔습니다. 이는 세계가 주의 것이며 타락의 뒤틀림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살피시며 적절한 은혜를 베풀어 오신 증거입니다. 땅과 하나님의 복이라는 주제는 구약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 또한 이 주제에 주목하기를 원합니다.

레위기는 희생제사들, 거룩한 규례들, 정결하고 부정한 대상과 동물들에 대해, 절기들에 대해, 순종과 거룩의 삶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레위기의 희생제사와 모든 절기들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복들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비옥한 땅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성도의 기업인 교회 안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어진 약속들이 성취되고 우리는 이 모든 복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성도 여러분! 오래 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심이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구약의 언약적 약속이 오늘 새 언약 백성인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심은 곧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를 주심을 가리킨다.”입니다. 이 주제로 다음 세 가지 요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둘째, 이 약속은 우리의 순종과 함께 역사한다.
셋째, 약속과 보상

첫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땅에 대한 약속은 성경 처음부터 제시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부터 이 약속은 주어집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서 하나님께서는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면류관으로서 사람을 그 땅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왕으로서 사람은 땅을 즐겁게 통치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늘을 복사하는 땅인 에덴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이 통치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 죄가 세상에, 땅에 들어왔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반역했습니다. 그 결과로 사람은 하늘의 복사인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즉시로 땅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그 땅에서 저주의 결과로 주어진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하기 위한 방편들을 준비하시고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이 여자의 씨에 대한 약속이고 아브라함과 그 후손과 맺은 언약의 내용입니다.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성도의 기업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약속이 실현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모세가 레위기를 기록할 그 시대에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아직 상속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서 언약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교훈하셨습니다.

본문 3절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순종을 요구하심을 보여줍니다. “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찌라...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5계명에서도 땅과 관련한 약속이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야웨가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안전하게 계속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중에 가장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서 주의 백성과 함께 사실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본문 11,12절입니다. “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들과 약속의 땅에서 함께 사실 것입니다. 이는 언약의 복과 생명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와 왕들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전체 땅을 이전 영광과 선함으로 회복시키기 원하셨습니다.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평강과 번영을 얻도록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오직 한 민족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독특한 사명이요 언약적 지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모든 민족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민족들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 안에서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적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거대한 지구의 한 작은 땅에서 하나님께서 처음 낙원의 희미한 빛을 다시 비추고 계십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일뿐이지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장차 올 것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약속된 그 여자의 후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의 약속은 “예와 아멘”이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이에 대한 더 광범위한 관점을 제시해줍니다. 롬4:13절입니다. “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우리는 구약이 말하는 것처럼 아브라함이 자신이 나그네로 있던 가나안이라는 작은 나라를 상속받았지만 사실은 세상을 상속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또 엡6:2,3절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말씀은 분명히 제 오계명의 인용합니다. 그러나 신약의 관점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장수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계시록에서 처음 창조에서 뱀과 사람이 황폐하게 한 하늘과 땅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회복되고 있습니다. 모든 눈물과 슬픔이 사라지고 생명나무가 그 중심적인 위치를 다시 찾습니다.

그러므로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약속은 이제 이스라엘을 뛰어넘어 우리를 위해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고 새 창조의 상속자입니다.

바울은 이 ‘땅’에 대한 약속을 골로새서 1장 12-14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이 말은 구약의 땅에 대한 약속을 당신 안에서 성취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옮겨서 약속의 기업(성도의 기업)을 얻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받았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 곧 교회입니다.

둘째로, 이 약속은 우리의 순종과 함께 역사한다.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것은 광야의 세대에게 정말로 환상적이고 놀라운 복입니다. 신약의 성도에게 약속된 회복된 낙원의 영광, 즉 새 하늘과 새 땅은 참으로 놀랍고 믿을 수 없는 복처럼 들립니다. 이 약속은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약속을 위해 숨 가쁘게 일하거나 땀 흘리지 않았습니다. 집, 외양간, 저수지, 포도원, 전체 땅은 완전한 선물, 상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모든 것을 스스로의 수고로 얻어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알 것은 이 약속이 자동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언약의 약속은 책임과 묶여 있습니다. 언약은 제아무리 우리가 악하게 행동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그런 의미에서 무조건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전적인 순종과 의뢰가 있어야 합니다.

이 언약의 요구는 우리 본문에서도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3절입니다. “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 모세는 여기에서 순종의 요구를 강조합니다. 이 언약의 요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본문이 위치한 형태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위기 26장은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임할 복의 목록과 언약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 임할 더 긴 저주의 목록을 제시합니다. 이렇게 언약의 복과 저주를 장황하게 반복하는 결론적인 장입니다. 이런 형태는 신명기 28장에서도 나타납니다.

고대의 일반적인 언약들 혹은 조약들에서 주권자가 감사와 충성을 다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언약을 맺는 상대자에게 부여하는 다수의 유익들을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언약에 포함된 신실함에 대한 복의 목록과 반역에 대한 더 긴 저주의 목록을 강화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서도 동일한 형태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기에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법적이고, 성경 외 본문들에서 신들(복수)은 복 혹은 저주를 행하도록 자극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비, 질병, 전쟁 등과 같은 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 각 신은 행동하도록 요청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서 언약의 복과 저주는 직접적입니다. 순종에 대한 복과 반역에 대한 저주로 반응하도록 하나님께 기도 혹은 요청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실행하실 것이라는 것에 대한 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상상으로 만든 우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멈추어야 했습니다. 여섯 지파는 복을 반복해서 선포하기 위해 그리심산에 서고, 다른 여섯 지파는 저주를 반복하여 선포하기 위해 에발산에 섰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확정했습니다. 추수와 복에 대한 환상적인 약속과 더불어 순종에 대한 진지한 요구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책임을 부여하셨습니다. 그 책임은 감사의 표로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는 새 언약 안에서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의 요구를 더 잘 이행하기 위해 우리는 복이 약속되어 있는 본문과 연결되어 있는 책임의 본문들을 놓치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레위기 20:22-24절입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후에 모세는 그 땅을 정탐하도록 열 둘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의 땅이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을 확정했습니다.(민13:27) 그러나 열 정탐과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약속을 받을 것을 거절하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신실한 두 사람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의뢰하고 주를 경외하라고 권고합니다.(민14:7,8)

광야 40년의 시간이 끝나가는 시점에 모세는 이스라엘 후손들이 그 놀라운 약속의 땅을 상속할 수 있도록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것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하나님의 약속과 지나온 40년의 야웨의 인도와 보호를 회상시켜 주었습니다.(신8:6-10) 약속은 하나님의 호의에 기초해 있지만, 이스라엘의 순종에 달려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배우고 확인하는 것은 언약의 요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실패입니다. 엄청난 은혜를 입었음에도 이스라엘은 넘어지고 반역하고 배도하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죄와 비참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실함, 능력에 대해 낙관적으로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은 우리의 거울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32:19-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 한 연고로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불순종 때문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유다 땅을 가로질러 걸어가실 때에 그 땅의 대부분이 이방의 수중에 있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복을 내리심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당신의 저주를 내리심에 있어서도 신실하십니다. 그렇다면 주의 그 놀랍고 위대한 약속은 어떻게 실현됩니까?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그 작은 땅을 주신다는 약속이 실현될 수 없다면 새 세상에 대한 약속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십니다. 사랑과 순종이 당신께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중보자의 역할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악됨과 반역으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저주를 당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당신의 저주를 쏟아부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당신 백성의 위치에서, 당신 백성을 대신하여 그 저주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 땅을 보상으로 받으셔야 마땅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저와 여러분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새 세상의 약속의 성취를 보증하셨습니다.
하늘로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이제부터 주를 위해 감사하면서 살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사시며 우리의 교사가 되어 우리가 기꺼이 예수님을 섬기며 살게 하십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올 한 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구원을 즐거워하며 감사할 것인지 우리는 결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난 해 우리의 삶의 열매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쁨으로 순종했습니까? 그리스도의 뜻을 사랑하고 기쁨으로 행했습니까? 사람을 기쁘게 했습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했습니까?

우리는 개인적으로 이 질문들에 답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순종의 적은 시작이 있다고 답한다면 주님께서 찬양받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의 사역을 행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태만하거나 이기적인 탐욕 혹은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를 구했다면 우리는 죄를 고백하는 자리에서 더 겸비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죄용서를 주시고 새 언약을 여전히 유효하게 해 주실 그리스도를 더 찾고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새 땅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완성된 새 땅이 임할 것입니다.  

셋째로, 약속과 보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신다는 약속에 대한 보상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본문 4,5절을 보십시오. “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찌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농부들은 농작물을 거두기 위해 아마도 쉬지 않고 일을 할 것입니다. 곡식은 일반적으로 초여름에 거두었고 뒤를 이어 포도와 감람나무가 수확되기까지 두 달의 간격이 있었습니다. 일단 비가 늦은 가을 혹은 초겨울에 시작하면 씨를 뿌리는 일이 시작됩니다. 풍성한 농작물 뒤에 연이어 또 풍성한 농작물을 거둡니다. 물론 그런 풍성함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 복입니다. 왜냐하면 언약의 주님은 만물을 다스리는 창조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른 땅에서 꽃을 피워 낙원이 회복되게 하십니다.
여러분! 이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기쁨으로 외치게 합니까? 이 얼마나 엄청난 복입니까? 미래에 대한 놀라운 전망입니까? 하지만 현실의 실재는 다르고, 이로 인해 우리는 슬픕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우리는 약속의 완전한 실현에 대해 거의 확인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기근과 외부의 침입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은 실패입니까? 완전히 실현될 수 없는 약속입니까? 아닙니다. 구약의 약속은 종종 예언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암9: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그 때에 밭 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이 본문은 메시야를 고대하는 요청입니다. 그리스도 없이 이 복들은 성취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이 본문들을 직접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이단들은 이 언약의 복을 바로 적용합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양식을 축적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복의 표징으로 삼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 또한 하나님의 수용과 복을 상징하는 것으로 ‘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부유해지면 질수록 그는 더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도 이런 식으로 언약의 복을 적용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물질적 가난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그 사람은 신앙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오직 ‘부’, ‘성공’에 가두고 있는 것, 이것은 세속적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기독교국가는 부자고, 비기독교국가는 가난하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잘 살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복음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킨 것입니다. 이런 적용은 잘못된 적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에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랍니다. 땅이 거룩한 땅은 없습니다. 가나안은 새로운 낙원의 표상입니다. 우리 시대에 이 세상의 비옥한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 땅의 상징입니다. 새 땅은 부동산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막10:29-30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오늘 받게 될 복은 새 가족과 새 땅, 곧 ‘새 언약 교회’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좋은 곡물로 우리의 밭에 복을 주신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그 곡물을 복으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성취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곡물들을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군들은 나라를 위해 일하기 위해서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물인 이 땅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의 입을 위해 좋은 곡물들을 내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또한 인류가 당신께 영광을 돌리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재앙, 기근, 가뭄을 내리시기도 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완전한 순종에 의해 우리를 위해 가져오신 것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양식을 먹읍시다. 곡물이 추수될 때에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그 곡물을 보내주시는 이유를 기억하면서 은혜의 선물을 먹으면서 감사합시다. 언젠가 완성된 새 땅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약속된 그런 놀랍고도 환상적인 추수물을 낼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도의 기업을 기뻐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하나님의 은혜로 젖과 꿀이 흐르는 새 땅을 성도의 기업으로 받고 하나님의 창조된 땅에 살고 있지만 더 영광스럽고 완성된 새 땅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완성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를 고대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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