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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sermon
주일오전예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7-23 (일)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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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3일 주일 오전 설교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2017년 7월 23일 주일 오전 설교
성경봉독: 롬11:1-36
설교본문: 롬11:2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설교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는데,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오랜 세월 동안, 이 질문에 대한 수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1948년에 이스라엘 국가의 재건은 로마서 11장 26절의 예언 성취의 첫 단계라고 주장했습니다. 특별히 세대주의자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 가운데서 엄청난 회심을 일으키는 사역을 행하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곧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믿음에 이르게 될 것이고,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 가운데 회심을 일으키시고, 그들이 회심할 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는 심지어 개혁신학의 지지자들 가운데서도 발견됩니다. 또한 국내에서도 소위 개혁주의 신학을 지지한다고 하는 신학교수들과 목사들이 이런 견해를 따르고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아예 개혁주의자라고 하면서 세대주의 신학을 따르고 있습니다. 또 이게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고 대다수의 성도들도 막무가내로 따라갑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과연 이런 해석은 옳은 것입니까? 성도 여러분! 분명히 로마서 11장 26절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일어날 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읽기의 기본원칙은 한 문장이나 한 장이나 혹은 한 책을 성경 전체 문맥과 상관없이 해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본문자체의 문맥을 보면, 분명히 이런 해석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읽기의 원리는 한 성경책을 다른 책들과 비교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외에 성경 다른 책들을 보아도 그 어디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유대인들 가운데 대규모의 회심이 있을 것이라는 그런 사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로마서 11장이나 로마서는 그 당대 유대인들의 구원에 대해 말하고, 당대의 모든 유대인들이 다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명으로 선택된 모든 유대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택자들 중에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온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따라서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로마교회성도들에게 예언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예언의 성취도 보여주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오전 저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선언하셨다.”는 주제로 하나님의 복음을 설교하려고 합니다. 이 주제로 다음 세 가지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온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둘째, 하나님께서 어떻게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가?
 셋째, 오늘 우리를 위한 적용입니다.        

 첫째로, ‘온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온 이스라엘’이 누구인가? 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이란 말이 모든 지파와 방언과 나라로부터 나온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언급이라고 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원을 얻게 될 ‘온 이스라엘’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모든 신약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문맥에서 말하는 것보다는 적용을 마치 성경해석으로 오용하고 있다.) 로마서 9-11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이란 말을 열 번 사용합니다. 그때마다 이스라엘이란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데, 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혹은 유대인들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서의 다른 곳에서는 “유대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오직 로마서 9-11장에서만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유대인이라는 용어는 포로 시대부터, 즉 회복된 언약과 연관되고 그 당시에 백성들에 해당되는 독특한 용어입니다. 신약시대는 회복-언약시대입니다. 사회적이고 국가적으로 신약교회에게 양극은 유대인과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갑자기 로마서 9장부터 “이스라엘”이란 용어로 돌아갑니다. 즉 이스라엘이란 말은 모세 언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칭했던 용어입니다. 이 이름은 열방의 제사장이라는 소명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바울은 지금 열방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가 아직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은 주후 70년까지 계속해서 세상의 중심의 지위를 유지합니다. 그런 이유로 바울은 지금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 시점에서 유대인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란 말을 신약교회전체를 가리킨다는 식으로 역사와 본문의 문맥을 무시하고 해석해 버리면 안 됩니다. 어쨌든, 우리 설교본문의 이스라엘은 분명히 ‘제사장 나라’로서 이스라엘, 즉 참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 대해 말해줍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울이 ‘온 이스라엘’이라고 말했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바울이 전체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합니까? 바울이 전체 혈통적인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까?

 물론 그럴 리가 없습니다. 모든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들이 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비성경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믿지 않았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봅니다. 에서가 그 예입니다. 그 외에도 언약적 신앙을 포기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복음서에서, 예수님 당대에도 그리스도를 거부한 유대인들에 대해 말합니다. 한 예로 가룟 유다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도 이 사실에 대해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6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 중에 일부 사람들을 생명에로 선택하시고, 다른 사람들을 버리셨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9-11장에서 바울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고, 그 답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결정하셨다입니다. 따라서 우리 설교본문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온 이스라엘’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온 이스라엘’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요? 따라서 우리가 전체 성경을 살펴보면, ‘온 이스라엘’이란 말은 구약에서 100번 이상 나옵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모든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 3장 7절에서 온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것에 대해 말할 때 이 경우는 전체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참고,대상21:5;29:21).

 그러나 반복적으로 이 말은 모든 개별적인 이스라엘 사람들 하나 하나를 포함하지 않고 집합적인 의미로서 이스라엘을 묘사하는데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 7장 25절에서 ‘온 이스라엘’이 아간을 돌로 쳤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이 말씀을 읽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유아로부터 노인까지 이스라엘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돌을 집어 들어 아간에게 던졌다고 이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여호수아 8장 21절에서는 온 이스라엘이 아이성을 향하여 진군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자와 아이들이 포함하지 않았음을 이해합니다. 실제로, 여기서 온 이스라엘은 ‘전쟁을 하는 사람들’입니다(1,3절).

 또 사무엘상 17장 11절에서 ‘온 이스라엘’이 주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의 소리를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남녀노소가 아니라 골리앗과 싸우러 온 군사들이 이 골리앗의 소리를 들은 것을 말함을 알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온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백성들 남녀노소 각각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 이스라엘의 대표를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구약은 ‘온 이스라엘’의 개념에 대해 더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이 지도자들 혹은 군사들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을 묘사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이 말의 대표적인 기능은 구약 성경의 후반부에서 더 반복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교했을 때, 온 이스라엘은 신실한 남은 자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실한 남은 자들이 참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북쪽 열 지파 왕국이 포로로 끌려가고, 얼마 후에 남쪽 두 지파 왕국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남쪽 두 지파 왕국의 적은 수가 바벨론 포로에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포로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에스라 2장에서 ‘온 이스라엘’이라고 묘사합니다(70절, 느7:72).

 숫자로 따지면, 이들은 세상에 있는 이스라엘 전체 숫자 중에 적은 숫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라를 감동시켜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적은 수의 사람들을 온 이스라엘이라고 묘사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재건하고 봉헌했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속죄제로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숫자에 따라 수염소 열 둘”을 드렸습니다(에6:17,8:21). 이것은 이  남은 자들이 그 자체로 온 이스라엘의 표명이고, 스스로 참된 온 이스라엘임을 알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포로의 땅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자들은 참된 의미로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것이 바울이 구약에서 배워서 로마서에서 사용한 개념입니다. 바울은 자기 서신서에서 이스라엘이란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말은 특별히 제사장 나라로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 대한 언급입니다. 그러나 우리 설교본문에서 바울은 구원에 대해 말할 때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란 말 앞에 구약에서 배운 형용사를 붙입니다. 남은 자로서, 경건한 소수로서 이스라엘의 개념을 담을 수 있는 형용사를 붙입니다. 바울이 오늘 우리 설교본문에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을 때, 바울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 남녀노소가 다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 하나님께서 참 이스라엘로 보신 자들에 대해 말합니다. 바로 이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바울은 우리 본문 1절에서 강력하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 답은 “그럴 수 없느니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약 전체에서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참고, 사6:13;10:20이하). 이런 일이 엘리야 시대에 일어났습니다.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교했을 때, 당대에 이스라엘 안에서 택한 자의 충만한 수인 남은 자 7000명을 보존하셨습니다(2-5). 이 남은 자들이 보존된 것은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된 것입니다(6절).

 또한 바울 당대에, 바울 자신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였습니다(1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참 이스라엘은 약속된 기업을 받을 것입니다. 7절에,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따라서 26절에서, 이스라엘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지키시고, 당신의 백성들에게서 죄를 제거하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하십니까?      

 여러분! 우리 설교본문은 “그리하여”로 시작됩니다. 이 말은 우리 설교본문 이전의 구절들과 우리 설교본문을 연결시켜 줍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그리하여”라는 말은 우리설교본문 이전 구절들에서 바울이 ‘온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 개괄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 방식은 25절에서 언급된 ‘비밀’에서 강조됩니다. 즉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 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비밀이란 말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러나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성경에서 비밀이란 말이 비밀스러운 계획을 묘사하는 것도 아니고, 결코 이전에 계시되지 않았던 하나님의 계시의 어떤 국면, 새롭고 흥미로운 뭔가를 묘사하는 것도 아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비밀이란 말은 실제로 이전에 말했지만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것을 믿음의 사람에게 분명하게 해 주는 그런 개념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통해 행하실 구원이 아브라함의 육신적 후손들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열방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명백히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 12장 3절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 약속에 따라 다윗은 시편 22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 야웨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라.”(27절). 이사야 선지자도 이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사야 66장 23절입니다. “야웨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그러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으로부터 유익을 얻는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어떻게 나아올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것은 바울 당대의 유대인들에게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계시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감동하심을 입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이 주께로부터 돌아서고, 하나님의 백성 아닌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호세아 선지자는 음녀와 혼인하여서 아들을 낳아서 그 이름을 “로암미”라고 했는데, 그 말은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1:8;참고,신32:18). 이 이름은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거부하기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같은 선지자 호세아가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지파와 방언에게 보이실 자비에 대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호2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2장 23절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이방인들]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이것은 구약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당신을 거부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께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한 백성을 데리고 오실 것임을 지적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즉 이 사실은 분명히 계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순절에 오신 성령의 인도 하에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은 이 비밀을 공개했습니다. 구약에서 감취어진 것을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읽어 준 것입니다. 비밀은 구약에서 예언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바울이 말하는 이 비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기에서 좀 더 상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이 완악함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완악함이 이방인들의 구원에 무슨 기여를 합니까? 우리 본문 11절에서 답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1절에서 “저희가 넘어져서 실족함”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서 실족함과 넘어짐은 무죄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빌라도에게 한 유대인들의 요구와 유대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거부입니다(마27:22이하, 참고, 행2;23;3:14:5:30). 그러면 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까? 모든 유대인들이 선에서 떨어져서 영원히 버림받았습니까? 11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의 범죄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나누어진 벽을 허무는 복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엡2:13이하). 12절에서 “저희의 넘어짐”은 문자적으로 저희의 범죄를 말하고, 저희의 범죄는 세상의 부요함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에서, 성막에서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만 임했습니다(시147:19이하). 유사하게, 구약의 선지자들도 유대인들에게만 설교했습니다. 예수님도 오직 유대인들 가운데서만 일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두로-시돈 지방에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바라는 과부에게,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5:24).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도, 제자들에게 이방인들에게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성으로도 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죄와 사탄에게 승리하시고,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 높아지신 후에(구속 역사의 진전), 복음은 온 세상으로 가야했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28장의 명령은 제자들이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족속을 제자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마28:19).

 확실히, 제자들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했습니다. 로마서 9장 4절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장 16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입니다(참고, 행1:8). 이런 이유로 사도들은 복음을 전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복음을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파했습니다(행13:14;14:1;17:1). 그러나 여러분! 유대인들은 거듭 거듭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무리 중에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행13:42이하;14:2;17:5이하). 즉 육신적인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통해 실행하기를 기뻐하시는 구원 사역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에서 밝힌 방식에 따라서, 이스라엘의 거부가 사도들로 하여금 이방인들에게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안디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6절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그러나 유대인들은 약속과 기업으로 부요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세상을 위하여 준비하신 복음에 대해 마음을 강퍅하게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우리 본문에서 감람나무로 설명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기 때문에” 원래 가지의 일부를 꺾으십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감람나무에 접붙여진 것입니다.

 이 감람나무는 이스라엘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푸른 감람나무”라고 불렀습니다(렘11:16, 참고, 호14:6). 여기에 추가해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가지들을 잘라버리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16절이하). 바울은 롬11장에서 바로 이 이미지를 취하고, 이에 새로운 가지들이 접붙여질 것에 대해 추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 새로운 가지들은 원래 나무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 감람나무의 죽은 가지들은 제거될 것이고, 새로운 가지들이 접붙여져서 진짜 이스라엘, 참 이스라엘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것입니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원래 유대인들이든지, 원래 이방인들이든지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입니다(롬4:11,16이하).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까? 어떻게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로부터 남은 자들이 구원을 얻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미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내에서 강퍅하고 불신앙함으로 복음이 이스라엘 밖으로 갔습니다. 구약의 약속대로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신32:21,롬10:19). 이것은 구약의 예언이고, 바울의 소망이지 오늘 우리의 소망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방인들 가운데서 바울의 사역은 이스라엘을 시기 나도록 자극하는 사역입니다. 그리고 이 자극하는 사역은 주후30년부터 주후 70년 예루살렘 파멸까지, 이 중첩기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이런 사역은 오늘날은 계속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비유대인들이 복음을 믿는다고 전혀 자극을 받지 않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으면 자극을 받을지 모르지만 이방인들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전혀 자극을 받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 구조가 아닙니다. 오늘날은 다만 신자들과 불신자들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본문은 1세기 기독교회, 즉 주후30년-70년 중첩기 동안 일어날 일을 말합니다. 이방인들의 구원이 이스라엘을 시기 나게 하는 것은 바울 당대의 교회의 일입니다. (따라서 오늘도 유대인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고, 또 예루살렘이 회복되어야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그릇된 종말론에 사로잡혀 ‘백튜더 예루살렘’ 운동하는 모든 것이 정당성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비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는데, 도대체 이 예언은 어디에서 어떻게 성취됩니까? 분명히 바울은 자기 서신서 어디에서도 이 예언의 성취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데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한 성경책은 다른 성경책과 연관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요한계시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어떻게 바울의 예언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습니까?

 먼저, 우리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옴에 대해 계10장 7절에서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한글개역성경은 이루리라고 미래적인 의미로 말하지만 이것은 이루어졌다,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의 들어옴은 중첩기에 이방인들의 교회의 완성, 곧 땅 끝까지, 온 세상의 복음 전파가 이루어져서 이방인들의 교회가 완성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바울서신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3절에서도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의 들어옴에 대해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계시록 11장에서 예루살렘에서 두 증인의 사역과 순교가 있었고, 이 일로 인해 많은 유대인들이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계시록 11장 15절에서 세상이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바로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들어옴”의 성취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예루살렘에 있는 많은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탈출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계12:14).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의 회심한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출애굽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14장 1절에, 십사만사천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시온산 위에 어린양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남은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되어야, 예루살렘에서 출애굽해야 예루살렘에 진노의 잔이 부어집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먼저 충분히 익은 이 추수물들을 거둡니다(계14:14-20). 우리는 계시록 15장에서 이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죽도록 충성하고 주님과 연합 자들입니다. 이 순교자들이 바로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말하는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구원을 얻게 됨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예루살렘에 부어져서 예루살렘이 파멸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서 11장 우리 설교본문의 말씀은 주후 70년 어간에 성취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일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이렇게 찬양합니다. 33절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하나님의 이 놀라운 방식을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셋째로, 오늘 우리를 위한 적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설교본문에서 바울의 메시지는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적용점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적용을 한 네 가지로 언급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오늘날 팔레스틴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 이스라엘 국가에서 큰 회심을 일으키실 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대주의자들은 오늘 우리 설교본문에 근거하여 그런 망령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롬11장에서 바울은 그런 예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 가운데서 그런 회심의 사건을 일으킬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확실히 그런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그런 일도 충분히 행하실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그런 약속을 하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유대인들은 더 이상 특별한 민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불신자들과 똑같은 그냥 불신자들일 뿐입니다.
 두 번째로,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 전체를 거부하고 지옥으로 바로 던지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1세기에 유대인들 중에 남은 자들이 주후 70년 이전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택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세상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반유대주의 운동을 용납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특별히 미워할 여지가 없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에게도 다른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오직 한 길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오늘날 다른 세상 사람들에게 선교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유대인들에게도 똑같이 선교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긴급한 것보다 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긴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날 유대인들도 저와 여러분과 똑같이 복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유대인들에게도 똑같이 선교를 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바울은 말하기를, 유대인들은 구원의 나무의 원 가지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원 가지들을 잘랐습니다. 여기에 경고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과 같은 이방인들에게 경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우리를 접붙였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다 잘 될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서 언약과 하나님의 은혜를 추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옛 이스라엘 백성로부터 남은 자들을 보존하시고, 그 남은 자들을 ‘온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 여기에 당신의 백성들로부터 남은 자들을 보존하시고, 이 교회를 ‘남은 자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참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특징은 믿음과 믿음의 순종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세대의, 모든 곳의 교회들의 특징도 또한 믿음과 믿음의 순종입니다. 여기에 또한 믿음 안에서 날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의 소명이 있습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던져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이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확실히,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경영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들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이 하나님께서 무한히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과 은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자들과 맺은 언약을 유지하십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 앞에 있는 도전들 가운데서 용기를 줍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사탄의 공격의 맹렬함에도 불구하고, 야웨 하나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손에서 하나님의 택한 유대인들을 빼앗아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이방인의 택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사단의 진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지옥의 공격에 직면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보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일을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에 대한 많은 해석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기대들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혼란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우리 설교본문에서 큰 위로를 발견합니다. 우리의 날마다의 투쟁 가운데서도 엄청난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는 주후 70년에 이루어진 이 예언의 성취를 통해 마지막 날을 내다봅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의 충만한 수가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미 성취된 예언을 통해 미래의 더 나은 약속을 받았고, 이 약속으로 충분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믿고 위로를 누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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