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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논단 및 에세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2-12 (목)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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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논단) 후기 알미니안의 다양성
후기 알미니안의 다양성

1.자유주의적 알미니안
알미니안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속죄와 성령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구속에 있어서 성자나 성령의 사역을 결정적인 것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 일부 알미니안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대리속죄를 거부하는 소시니우스주의(소시니안)쪽으로 흘러갔고, 또 다른 알미니안들은 합리주의나 보편구원설과 결합했다. 합리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심했고 전통적 속죄 개념을 반대하고 예정론과 칭의론을 수정했다. 삼위일체론도 종속설로 몰아 갔다. 결국 알미니안은 합리주의적, 도덕주의적 성격을 가지게 되어 교리보다 윤리를 중요시하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구속자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율법 수여자로 보게 되었다. 회심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만이 아니라 인간의 협동이 필요한 것이 되었으며 공로의 전가에 의한 법적인 칭의 개념도 부인했다. 이들의 신학은 영국에서 절충주의 신학으로 발전되었는데 혼합주의에 기초한 합리주의는 알미니안 신학을 통해 자유주의로 전진하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2.청교도적인 알미니안
알미니안주의는 네덜란드 자체에서는 크게 번성하지 못하고 그저 존속하는 정도였으나 영국에는 큰 영향을 주었다. 영국의 왕정복고(1660년대) 후 영국 기독교 신앙의 주류는 알미니안주의가 되었다. 이 사상은 한편으로는 유니테리언주의와 합류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침례교와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과 구세군에 영향을 끼쳤다. 알미니안주의는 청교도의 대열로도 조금씩 잠식해 들어왔다. 유명한 토마스 굿윈도 알니미안이었다. 굿윈은 뉴잉글랜드 스타일의 회중교회주의로 기울었는데 그의 회중정치 사상은 나중에 영국 독립파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리처드 벡스터는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제한속죄를 제외시키는 아미랄드주의(Amyraldism)의 경향과 신율법주의의 경향이 있었다. 17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했던 존 밀턴 역시 알미니안주의자이었다.

3.웨슬리주의적 알미니안
요한 웨슬리의 신학은 일정 부분은 개혁신학과 같이하고 일정 부분은 독특한 웨슬리-알미니안을 형성한다. 하지만 성결한 생활을 하게 하려는 웨슬리의 목회적 열정은 행위가 칭의에 대한 필요조건이라 주장하게 했고 성결교리를 붙들기 위해서 평생에 걸쳐서 개혁신학의 예정론에 열정적으로 반대했다. 이는 그 역시 알미니우스처럼 칼빈의 예정론을 숙명론으로 오해하여 예정론이 성도의 의지와 도덕적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성결교리를 파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했던 웨슬리는 보편속죄를 가르쳤고 사명과 관련된 선택은 무조건적이지만 구원과 관련된 선택은 반드시 믿음을 조건으로 한다고 가르쳤으며 유기는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며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성도의 견인에 대해서도 한번 믿음 사람이 끝까지 타락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성경에 없다고 주장했다. 중생전의 모든 사람에게 초자연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행적(先行的) 은혜로 말미암아 인간에게는 회복된 일정한 양의 자유의지가 있다고 설명했고 선행적 은혜를 활용해서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돌아 올 수 있다고 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악을 분별하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을 회복시켜 주셨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은 자기를 구원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때 타락한 인간은 자기를 구원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때 ‘최소한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협력해야’ 되며 협력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펠라기우스가 이단으로 불린 것에 대해 회의적인 동시에 동정적이었다. 그는 알미니우스의 예지 예정과 보편속죄론, 자유의지에 관한 사상을 수용하여 합리적인 신.인협력설을 강조함으로써 웨슬리안-알미니안이라는 새로운 신학적 조류가 형성되게 했다. 또한 웨슬리안주의와 알미니우스주의의 결합은 복음전도와 선교활동을 촉진했다.  

4.미국의 알미니안
18세기 말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시작된 제2차 대각성 운동(1795~1835)을 이끌어 낸 주역은 찰스 피니였다. 피니는 정통신앙을 알미니안주의 및 펠라기안주의적 부흥주의로 변화시킨 장본인이었으며 인간의 책임과 자유의지를 크게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완전한 복종이 칭의 조건이 된다고 가르쳤으며 원죄론이 비성경적이라 비난했다. 또한 인간은 본성으로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했고 그리스도의 죽음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까지 했다. 그 이후의 복음 전도자였던 드와이트 무디, 빌리 선데이 등으로 말미암아 알미니안들은 굳게 세워졌고 그 영향으로 오늘날 미국 안의 복음주의파의 교의는 신학에 있어서 주로 알미니안이다.

5. 초대교회 교부들의 알미니우스적인 오류들
클레멘트-인간의 부패성이 유전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고 보편 구원론적인 주장을 했고 성자께서 성부와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말했다.
순교자 저스틴-인간의 부패가 유전됨을 부인했다.
오리겐-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회개의 필요성을 말했으며 성자는 성부보다 열등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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